N X 토우코
너에게로 가는 길
노잼주의 내용없음
그 아이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신비로웠다.
N은 하나지방을 떠났다. 고향을 떠나 더 넓은 세계를 봐야, 그가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위치에 서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는 어느 순간 앞서나가 있었다. 영웅의 자격은 그 아이, 토우코가 가져야 마땅했다. 왕좌에 앉은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이 앉았던 옥좌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영웅. 그는 시골 마을에서 모험을 시작해, 마침내 전설을 넘어서 정상에 군림했다. 자신을 굴복시켰던 게치스마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미 하나 지방에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N은 토우코가 작은 세계에 갇혀 있을 사람이 아니란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N은 그녀처럼 볼 수 있고 싶었고,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꿈이 있었지만, N에겐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씩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는 절대적 자신감. 불필요한 오만함. 대신 새로운 열망이 자리잡았다. 토우코와 대등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지만, 옳음과 그름, 그리고 사람들과 포켓몬이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보고 싶었다. 그는 포켓몬과 일부 지식에 대해선 누구보다 박식했지만, 문명과 사회에 대한 이해는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그에게 꿈을 이루라고 말했다.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떠나야만 했다. 리그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서 수습도 않고 도망쳐버렸다고 말하는 자도 분명 있겠지. 죗값은 누가 치르게 될까. 남은 플라즈마 단원들? 그들은 제 신념에 공감하여 아군이 되어준 고마운 자들이었다. N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엔 여전히 포켓볼이 필요치 않았다. 내가 패자이기 때문에 틀린 셈인가? 아니, 토우코는 분명 부정했다. 포켓몬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완전하지 않다고. 우리 인간은 포켓몬에게서 수많은 것들을 빼앗았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허나, 불행하게도 이 넓은 땅과 바다에는 그녀처럼 지혜로운 사람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지하고, 폭력적이고, 포켓몬들을 한낱 도구로 보는 무뢰한을 만나면 그는 분노하며 배틀로 그들을 제압했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보면 볼수록 세상은 모순덩어리였다. 과연 해방을 위한 폭력은 의미가 있는 걸까. N은 토우코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간 것 같았다. 자신은 좁은 세상에서 편협한 정보들만 접하고 살아왔지만, 토우코는 달랐다. 그의 선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겪으며 고심해서 내린 무거운 답이었을 거다.
네 달이 넘는 방랑길이 이어졌다. 그는 호연 지방의 넘치는 생명력에 감탄했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포켓몬이 모두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N은 한시도 토우코에 대한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는 감정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봤지만 그건 수식처럼 쉽게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잠조차 건너 뛰고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으면, 조로아크가 다가와 그와 같이 사색에 잠겼다. 배바닐라나 아케오스는 여름의 무더위를 식히려고 날갯짓과 얼음 만들기를 반복했다. N은 그들에게 각자 감사를 표하며 가방에서 나무 열매를 몇 개 꺼내주었다. 그들의 입맛을 하나하나 섬세히 파악하고 있는 N의 가방에는 여러 종류의 열매들이 균등하게 갖춰져 있었다. 포켓몬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그도 허기가 느껴졌는지, 그는 포장된 전병을 뜯어 한 입 물었다.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고소하고 좋았다. 토우코도 먹어보면 좋을 텐데.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그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다, 식사를 멈췄다. 혼자서 어디까지 앞서나갈 셈인가. 그의 뺨에 옅은 붉은빛이 돌았다. 눈동자도 생기가 넘쳤다. 그는 자신을 골똘히 보는 조로아크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머쓱함에 모자를 눌러쓰고 남은 전병을 말없이 먹었다. 조로아크는 전후 상황을 파악했지만 아무 말도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포켓몬이 N에게 말을 건넸다.
다시 만나고 싶은가? 또 다른 영웅과. 청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시람이었다. 그는 햇빛에 찬란하게 비치는 백색 날개를 펴 N과 나머지 포켓몬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땡볕에 반쯤 녹아 내리던 배바닐라가 신나서 깡총거렸다.
"아, 그렇다." N은 바로 수긍했다. 과거의 쌍둥이 형제는 끝까지 대립하며 답을 내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레시람은 과거와 현저히 달라진 현재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이상은 현실과 양립할 수 있다. N과 레시람이 함께 내린 답이었다.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 현실을 이상으로 이끌어가는 힘. 둘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며, 어느 한 쪽을 꼭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N은 레시람과 눈을 맞췄다. 파랗고 투명한 시선이 그에게 확신을 준다. 그는 레시람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행이 끝나면,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러 같이 가다오."